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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

친구의 시골집에 들러-과고인장(過故人莊)

by 시앙라이 2011. 4. 3.



과고인장(過故人莊)-孟浩然 맹호연[각주:1]

故人具鷄黍(고인구계서) 친구는 닭과 기장밥 준비하고서
邀我至田家(요아지전가) 시골집으로 나를 초대하였네.
綠樹村邊合(녹수촌변합) 푸르른 나무숲 마을 주위를 둘러있고
靑山郭外斜(청산곽외사) 멀리 교외로 비스듬히 청산이 보인다.
開軒面場圃(개헌면장포) 창문 열어 마당가의 채마밭을 마주하며
把酒話桑麻(파주화상마) 술잔 기울이며 뽕과 삼을 얘기하네.
待到重陽節(대도중양절) 중양절 되기를 기다려
還來就菊花(환래취국화) 다시와 국화를 취해 볼거나


지난해에 찍은사진이 맹호연의 과고인장 시를 떠오르게 만드는 절경이었다.
전형적인 전원 자연시로 농촌 전경에 딱 맞는 풍경이다.
예나 지금이나 초여름을 즐기는 음식으론 닭 백숙이 최고인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더구나 절친한 친구와 농가 마루에서 한 잔 술을 앞에 두고 농사 얘기로 한가한 한때를 보낸다.한폭의 그림이 왜 아니겠는가?
시상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전개되고 있고, 특히 끝 구절의 “就菊花”에서 시인의 시간적 시상의 흐름을 현재에서 미래로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시인의 높은 공력을 엿볼 수 있다.

맹호연!
그는 누구인가?
그는 벼슬에는 전혀 뜻이 없는 은일한 은자(隱者) 즉,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신선(神仙)의 경지에 노닐었던 사람일까?
그런 것은 아닌 것만은 그의 알려진 생애에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만, 그의 작품 속에서도 왕왕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분개하고 원망하는 감정을 표출 하는 것으로 짐작 할 수있는 데, 전반적인 그의 작품세계를 미루어 보아 그의 정신세계는 확실히 은일한 전원생활 즉, 도연명이 추구하던 은일한 전원세계를 꿈꾸었음이 확실하다.




  1. 맹호연(689~740):字도 浩然이다. 襄州 襄陽(지금의 호북성 양양현)사람이다.40세 이전까지 양양의 녹문산에 은거했고, 40이 넘어 벼슬길을 구하러 장안으로 왔다.당대의 내로라하는 문사들인 장구령(張九齡) ,왕유(王維), 이백(李白)등과 교류했다.왕유(王維)의 추천으로 출사 하려 했으나 현종이 그의 시 (歸終南山)의 “不才明主棄,多病故人疎”란 시구에 대단히 불쾌히 여겨 끝내 출사치 못했다는 일화가 있다.그 후, 잠시 친구인 장구령(張九齡)이 형주장사로 재임 시 속관으로 있었다 하나 정식 관직에는 출사치 못하고 전원, 은거생활로 일생을 마친 성당(盛唐)시 대표 자연시인이다.작품집으로 (孟浩然集)이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