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사람들은 똑똑하고 치밀하여 다른지방(중국내부) 사람들로부터 계산적이라는 이야길 많이 듣곤 한다. 오랫동안 경쟁이 치열한 대도시에서 살아가며 상업을 중요시한 결과 형성된 성품이라고 할 수 있다
치밀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했기에 이들에게 치밀함은 가치관이자 생존 능력을 의미한다.
상하이 사람들은 출장을 갈 때 비싼 기차표를 사주면 싸구리 자리로 바꾸고 차액을 챙기기도 하는 상해사람들..
그런 상하이 사람들이 대낮에 거리낌없이 잠옷 차림으로 시내를 나다니는 여성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그저 이방인 눈에는 생경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별난 습관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상해 여성들의 이와 같은 잠옷 외출은 적어도 70년대 초부터 시내 볼거리로 등장했다고 한다. 작년 상해에서 엑스포가 열렸던 부분이다 비난의 소리가 높아지면서 상해 정협(政治協商會議)에서도 정식 의제로 다루었을 정도이다. 포동신구(浦東新區)나 와이탄(外灘)에 나가 보라.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표현이 무심할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새롭게 변모되는 대상해(大上海)가 아닌가. 막 잠자리에서 나온 것 같은 헐렁한 잠옷 바람으로 반찬거리를 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최대 번화가 남경로를 활보하는 모습은 아무래도 대도시 미관과는 동떨어진다는 지적이리라.
상해 여성들은 왜 잠옷 차림 외출을 선호하는 것일까?
개인의 문화적 품격이나 개성, 취향을 신성하고 비밀스레 지켜주어야 할 잠옷이 전통적인 금기를 깨고 외출복으로 둔갑한 특이한 현상을 사회학적으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혹자는 기후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한다.
온도는 옷차림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이다. 남방지역에서는 시원하고 간편한 옷을 대충대충 걸치고 지낸다.
세련되지 않고 촌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광주는 덥고 찌는 날씨가 생사람을 지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광주는 1년 중 반은 날씨 지옥이고, 나머지 반은 인간지옥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무덥다는 뜻이고, 전국 각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무작정 몰려드는 도시라는 뜻이리라. 광주인도 외출할 때와 집안에 있을 때의 의상에 대한 감각이 무디기는 마찬가지이다. 때와 장소, 경우를 가리지 않고 슬리퍼를 끌고 다닌다. 상해 잠옷 차림처럼 최근 광주에서도 슬리퍼 차림에 대한 논란이 벌어진다고 듣는다. 언젠가 홍콩 아주(亞洲) TV 퀴즈 프로에서 장원을 한 여성이 슬리퍼 차림의 의상으로 출연하여 100만 홍콩달러를 수상했던 장면이 기억난다.
그러나 덥지도 춥지도 않은 상해 날씨가 잠옷 차림 외출이 허용되는 유일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문제는 상해가 중국에서는 가장 개명되고 성숙된 최현대식 도시라는 데 있다. 성숙한 시민사회는 높은 공중도덕이 요구된다.
잠옷도 그 중 하나이며, 성숙한 시민만이 입을 수 있는 의상이다. 성숙한 시민이란 개인생활과 공공장소를 명확하게 구분할 줄 알기 때문이다.
상해 여성들의 잠옷 외출 바람이 기업들의 상혼(商魂)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값싼 잠옷이 시장에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누구라도 입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출용 잠옷과 수면용 잠옷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닐까? 어물전에 다녀온 비린내나는 잠옷 차림으로 침대에서 잠을 청하는 모습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상해에서 오래 살다보면 이 해답이 얻어질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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