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은 지금 '이명박 신드롬' 열풍
총선 압승한 국민당 총통후보, 타이베이 시장 거쳐 MB와 비슷
'747프로젝트'와 유사한 '623계획' 발표로 민생·탈이념 바람몰이
쿠데타로 쫓겨난 탁신 전 태국총리도 경제이미지 앞세워 총선 낙승 이끌어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민주당 후보가 1992년 대선 유세에서 예상외의 승리를 거둘 수 있게 한 선거 구호이다. 냉전을 종식하고 걸프전을 승리로 이끄는 등 외교분야에서 혁혁한 전과를 쌓은 당시 부시 대통령도 쇠락해가는 경제, 그리고 이를 무기로 들고 나온 패기만만한 젊은 후보 클린턴에게 맥없이 무너졌다.
비슷한 일이 이번에는 아시아에서 벌어졌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세 나라에서다. 지난달 ‘경제’를 화두로 내세운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자 태국과 대만의 선거에서도 이를 모방이라도 한 듯한 흡사한 상황이 연출됐다.
1월 12일 실시된 대만 총선. 일찌감치 ‘한국 정치의 복사판’이라는 소리를 들어왔던 대만 총선은 이에 부응이라도 하듯 야당인 국민당이 집권 민진당에 압승하는 싱거운 승부로 막을 내렸다.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의 집권 2기 8년간에 걸친 경제 실정, 대만 독립 노선 등 중국과의 갈등 요인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한 이념과잉에 식상한 유권자들이 정권에 철퇴를 내린 것이다.
민심은 경제에 있는데, 이는 도외시한 채 독립과 역사만을 떠든 정권에 대한 여론은 대만이나 한국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이명박 후보가 아닌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심판이 한국 대선의 본질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듯, 대만 총선 역시 국민당 보다는 민진당에 대한 불신이 승부를 갈랐다. 한국 대선이 막 끝난 지난달 말 총선 유세로 여념이 없는 마잉주(馬英九) 국민당 총통(대통령) 후보는 “유권자 사고가 변했다. 정부에 경제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한국 대선은 대만 선거와 유사하다”고 말했다. 그의 이 발언은 적중했다.
사실 한국 대선과 대만 총선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점이 많다. 우선 경제보다는 이념문제에 주력한 노무현 정부, 대만 독립문제와 역사 바로세우기 등에 집착한 천 총통에 대한 비판 여론이 두 나라 선거정국을 주도했다.
또 10년 야당 생활을 청산하고 집권에 성공한 한나라당처럼 대만의 보수 국민당이 8년만에 의회 권력을 되찾은 점, 대선 다음에 총선(4월)을 치르는 한국과는 역순으로 총선을 먼저 하고 다음에 대선(총통선거)을 치르는 대만 모두 의회와 행정을 모두 장악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3월 대선을 앞둔 대만에서는 요즘 ‘이명박 신드롬’이 한창이다.
총통 후보들이 서로 자신이 ‘대만의 이명박’을 자처하며 이명박으로 상징되는 경제를 경쟁적으로 선거 유세에 동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장을 지낸 이명박 당선인처럼 타이베이(臺北) 시장을 지낸 마 후보가 이명박 당선인의 ‘747’ 프로젝트와 비슷한 ‘623’ 프로젝트로 성가를 올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민진당이 집요하게 추구했던 대만 독립 정책은 급제동이 걸리고, ‘독립도, 통일도 추구하지 않는다’는 현상유지 정책이 다시 대중정책의 골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념 문제가 관심사에서 한발 멀어지는 대신 민생과 경제 살리기가 국가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등장할 것이다.
민진당의 앞길은 가시밭길이다. 총선 참패의 충격을 추스를 새도 없이 총통 선거에 대비해야 하나 이미 떠난 민심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집권당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민진당 후보가 보다 못해 천 총통의 독립노선에서 탈피해 중간 노선의 대선 전략을 취하기로 하는 등 ‘천 총통 색채 지우기’에 나선 것을 어쩔 수 없는 고육책이다.
한국 대선 직후인 지난달 23일 치러진 태국 총선 역시 경제가 모든 것을 말해준 선거였다.
2006년 9월 쿠데타로 쫓겨난 탁신 치나왓 전 총리 계열의 정당 ‘국민의 힘(PPP)’은 총 480석 중 과반에 약간 못 미치는 233석을 획득해 반(反) 탁신 최대 정당인 민주당의 165석에 낙승을 거뒀다. ‘국민의 힘’은 민주당을 제외한, 총선에서 의석을 획득한 다른 5개 군소정당과 연정에도 합의해 3분의 2 이상의 우호의석을 확보한 집권당으로 거듭났다.
‘국민의 힘’은 탁신 전 총리가 창당한 ‘타이 락 타이(TRT)’당이 지난해 5월 정당 해체와 함께 당 간부 111명에 대한 정치활동 금지 판결이 내려진 뒤 탁신 계열의 정치인들이 만든 신당이다.
사실상 탁신이 주도하고 있다. 권력에서 물러난 지 16개월만에, 그것도 쿠데타 군부정권의 노골적인 탄압에도 불구하고 탁신의 정당이 화려하게 재기할 수 있었던 힘은 역시 경제였다.
집권 중에도 부정부패와 비리 혐의로 수 차례 도마에 올랐지만, 민생 경제만큼은 확실히 챙긴 경제 이미지가 무능한 쿠데타 세력과 대비되면서 서민들의 향수를 자극한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국민의 힘’은 중산층 이하 서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제 관심은 해외 망명중인 탁신 전 총리의 행보이다. 영국에서 체류하다 총선을 앞두고 홍콩에서 당을 원격 지휘했던 탁신 전 총리는 기자회견을 통해 “이르면 2월, 늦어도 4월까지는 귀국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치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나의 견해를 얻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조언자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정치재개에 대한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문제는 그의 목을 옭아매고 있는 부패 혐의이다. 태국 대법원은 지난해 8월 국유지 불법매입 혐의로 탁신 부부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상태이다.
탁신은 또 자신의 일가가 소유한 부동산 회사인 ‘SC 애셋’의 주식을 은닉한 혐의로 두 번째 영장을 발부 받았다. 탁신 전 총리는 국민의 절대적인 추앙을 받으며 태국 권력을 사실상 틀어쥐고 있는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며 정치적 해법을 모색하고 있으나 국왕이 탁신 전 총리와 군부와의 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미지수이다.
타이베이 시장 재직 당시 특별비(판공비) 횡령혐의로 기소돼 당 주석직까지 사퇴했던 대만 마잉주 총통 후보와 ‘태국의 국부는 곧 일가의 재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를 독점하면서도 비리 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탁신 전 총리의 정치적 부활은 ‘문제는 경제’라는 화두가 갖는 위력을 새삼 확인케 한다.
한국일보 황유석 국제부차장 aquarius@hk.co.kr
'台灣 > 新消息' 카테고리의 다른 글
李明博上任建立新朝鮮半島和平機制 (0) | 2008.02.09 |
---|---|
천수이볜 스프래틀리 방문에 남중국해 격랑 (3) | 2008.02.04 |
대만도 `경제 살리기` 택했다 ‥ 국민당 총선 압승 (0) | 2008.01.15 |
<대만 총선을 바라보는 중국의 양안관계 전망> (0) | 2008.01.15 |
대만 야당 압승… ‘양안의 봄’ 오나 (0) | 2008.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