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中文

학문이란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by 시앙라이 2010. 4. 8.
글의 제목을 말씀하신 분은 바로 맹자(孟子)

學問之道無他 求其放心而已矣

학문의 길이란 다름이 아니라 자신의 흐트러지는 마음을 바로잡는 것일 뿐이다.

『맹자孟子』 < 고자告子 상上>



실천지학實踐之學을 지향했던 옛날의 학문은 모든 행위의 근본인 마음을 바로잡는(求己放心) 것을 목표로 했다.
마음을 바로 잡는다는 것은 흐트러지는 마음을 이겨내고 예를 실천하는 것 즉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의미한다.

이는 기능지학技能之學의 성격을 갖는 오늘날의 학문에는 별로 적용되지 않는 개념인 듯하다.
그러나 학문을 하기 위해서는 그 순간 모든 유혹을 극복해야 하며 다른 모든 잡생각을 배제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에도 흐트러지는 마음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학문이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난화蘭畵 한 권에 제題를 써 보내오니 받아 두시면 다행이겠나이다. 이 일이 하나의 작은 기술이요,
공교로운 예술이지만 전심專心하여 공력工力을 들이는 것은 성문聖門의 격물치지格物致知하는 학문과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가 한 번 손을 드는 것과 반 발을 옮기는 것이 도道 아닌 것이 없다 ……높은 복을 빌면서 갖추 쓰지 못하나이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에게 난蘭 그림에 제題를 써서 보낸 인편 편지의 일부분이다.
추사의 인격이 흠씬 묻어나는 글이다. 예술이나 학문 그리고 일상의 행동거지 모두에 전심專心하여 공력工力을 들여야 한다는 구절에서
그가 이룬 경지를 엿볼 수 있다. 전심이란 ‘흐트러지는 마음을 바로 잡은’ 상태인 것이다.


관련어구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

옛날의 학자는 자신의 수양을 위하여 학문을 했으나, 지금의 학자는 남에게 내보이기 위하여 학문을 한다. [論語]<憲問>


不學詩無以言 不學禮無以立

시를 배우지 아니하면 더불어 말을 할 수 없고, 예를 배우지 아니하면 자신을 세울 수가 없다. [論語]<季氏>


入則孝出則弟 行有餘力則以學文

들어와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공손히 행동한다. 이런 연후에 여력이 있거든 글을 배운다. [論語]<學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