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소망을 기원하는 용산사 풍경간절히 소망을 기원하는 용산사 풍경

Posted at 2009.04.23 23:08 | Posted in 台灣/旅行


너무 많은 신들에 대한 빠이빠이, 타이완의 민간 신앙

"타이완 사람들은 뭐든 닥치는 대로 빠이한다." 사람, 귀신, 신을 가리지 않고 모셔 놓고 빠이빠이하는 자신들을 비꼬며 하는 말이다. '빠이'나 '빠이빠이'란 말을 우리말 한 마디로 번역하기란 상당히 힘들다. 사전을 찾아보면 '빠이'는 '절하다', '공경하다', '빠이빠이'는 '타이완과 민남(푸젠 성 남쪽) 지역에서 명절날 행하는 제례 의식'이라고 나와 있다. 그러나 민간 신앙에서 빠이란 단순히 절하다, 공경하다라는 뜻으로만 쓰이지 않으며 빠이빠이 또한 단순한 제례 의식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번거롭고 잦은 행사이다. 타이완 사람들의 신앙은 꽤 복잡한데 그 민간 신앙에서 치르는 의식을 통틀어 빠이빠이라고 한다.


타이완의 삼대 명절로는 설날인 춘절, 단오절과 중추절을 꼽는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핵가족화된 타이완의 명절 분위기는 우리만큼 떠들썩하지는 않다. 타이완에는 삼대 명절뿐 아니라 크고 작은 명절이 많이 있고, 그 밖에도 빠이빠이라는 특수한 민간 신앙 의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와 타이완의 국교가 끊긴 뒤 지금 우리나라와 타이완을 오가는 비행기는 케세이퍼시픽과 타이항공뿐이다. 겨울이 되면 비행기는 타이완의 스키 관광객들로 가득차 중요한 일이 있는 사람들의 발을 묶어 놓는다. 타이완 관광객들의 관광 일정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경복궁인데, 그이들은 경복궁에 도착해서 상당히 의아해 한다. 타이완의 궁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궁은 왕과 왕족들이 살던 기품 있고 고풍스러운 왕궁이지만, 타이완의 궁은 빠이빠이하는 곳이다. 그래서 타이완 사람들은 기와를 얹은 집을 보면 무조건 빠이빠이하는 곳을 떠올린다.

타이완의 궁은 빠이빠이하는 곳
타이완의 궁에 도착하여 놀라기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타이완에는 대도시에서 시골 구석까지 어디에나 궁이 있는데, 향냄새가 진동하고 사람들마다 서서 무언가 열심히 빌고 있는 모습은 몹시 낯설게 느껴진다. 지난궁(지남궁), 티옌허우궁(천후궁), 펑티옌궁(봉천궁), 징안궁(경안궁), 뚱룽궁(동릉궁) 같은 타이완의 궁들은 왕궁이 아니라 신을 모셔 놓고 빠이빠이하는 장소이다. 궁뿐 아니라 묘도 많이 볼 수 있다. 묘란 본래 조상, 신, 불상 그리고 선대의 지혜로운 사람들을 모셔 놓은 곳이나, 오늘날은 주로 도교 사원을 가리키는데 타이완에서는 불교 사원과 도교 사원을 모두 사묘라고 부르고 있다.

이주민 조상들의 염원이 깃들인 민간 신앙
오늘날 타이완에서 유행하고 있는 종교는 불교, 도교, 유교, 일관도, 기독교, 천주교 들이 있다. 타이완의 종교를 말하자면 민간 신앙을 빼놓을 수 없다. 엄밀히 말하면 민간 신앙 또한 종교의 하나다. 민간 신앙은 타이완 사회의 주요한 문화 현상이며 사람들의 정신을 안정되게 하는 문화 종교의 구실도 한다. 타이완에는 여러 종교가 성행하고 있지만 유교, 불교, 도교와 이 세 가지가 융합된 민간 신앙이 가장 보편적인 종교이다.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종교는 유교, 불교, 도교이지만 민간에 깊이 파고들어 그이들의 풍속과 인생관, 가치관에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민간 신앙이다.

민간 신앙을 믿는 사람들을 숫자로 파악할 수는 없다. 민간 신앙이 불교, 도교와 서로 통하는 면이 있어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믿는 종교가 민간 신앙이 아니라고 말하는 까닭이다. 도교는 후한 때 장도릉이 창건한 하나의 고대 정령 신앙이다. 노자의 사상과 유가, 불교가 섞인 종교로서, 오랜 변천 과정을 거쳐 남방 도교가 완성되었다. 타이완의 민간 신앙은 도교의 영향을 크게 받아 도교의 색채가 짙고 민간 신앙과 도교를 혼동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타이완의 민간 신앙은 본질로 보나 형식으로 보나 중국 대륙의 푸젠(복건) 성 남부와 광둥(광동) 성 동부 일대와 맥을 같이한다. 지금 타이완에 살고 있는 한족들의 조상이 명나라 말기부터 청나라 초기에 푸젠과 광둥 일대에서 새로운 땅을 개척하기 위해 이민 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몇백 년 전 바다를 건너 타이완을 개척하기 위해 건너온 사람들은 무사히 바다를 건너 순조롭게 오지를 개척하려는 염원으로 고향에서 모시던 수호신을 배에 모시고 타이완 섬에 도착했다.

당시 타이완은 척박하고 산세도 험하였으며 천재지변이 수시로 사람 목숨을 앗아가곤 하였다. 이 시기에 빠이빠이하는 대상은 보통 각 가정에서 모셔온 향의 불씨와 신상 또는 현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들로 만들어 보존한 신상들이었다. 이주민들에게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질병과 재난이었다. 개척 시대에 의원이나 약재는 턱없이 모자라서 신의 힘을 빌려서라도 병을 치료해야 했다. 또 고기잡이하는 사람들은 무서운 풍랑에 목숨을 잃기 십상이었고, 오지를 개척하기 위해 줄을 잇는 이주자들은 목숨 걸고 바다를 건너야 했으므로 그이들에게 바다는 무서운 존재였다. 이런 열악한 현실은 민간 신앙을 발전시키는 데 큰 구실을 했다.

마을 사람들을 지켜 주는 신 마조
타이완 사람들의 빠이빠이 대상은 유교, 불교, 도교에서 숭상하는 인물들을 비롯하여 자연신, 전설신, 동물신, 인귀신, 식물신, 심지어 조상신까지 폭넓다. 오죽하면 누구든 뭐든 가리지 않고 빠이빠이한다고 할까. 자연신의 경우 천신 옥황대제, 토지신 토지공, 북극현천상제, 사해용왕 들이 있다. 인귀신은 본래 사람이었으나 죽은 뒤 신이 된 역사의 인물을 가리키며 마조를 대표로 들 수 있다. 타이완의 민간 신앙에서 가장 널리 추앙되고 있는 신은 마조와 토지공이다.
타이완에서 마조는 '천상성모', '천후'라고도 불린다. 타이완은 네 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이고 마조는 해상수호신의 하나이므로 그 신앙은 특별히 중시되어 왔다.
전설에 따르면 마조의 속명은 임 묵냥이었다. 구백육십년에 푸젠 성 포전 현 미주 도에서 태어나 구백팔십칠년 스물여덟 살에 죽었다. 마조가 태어날 때 서북쪽에서 붉은 빛이 뻗어 내려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보였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총명하였던 마조는 마음 또한 자비로워 이를 어여삐 여긴 어느 도사로부터 깨달음의 비법을 전수받았다. 열여덟 살 되던 해에 우물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신이 나타나 그이에게 동부(동으로 만든 부적의 일종)를 건넨 뒤 오색 구름을 타고 사라졌다. 마조는 동부를 통하여 법술을 익히고 액운을 막아내는 능력을 가지게 되어 법력으로 마을 사람들을 구해 주었다. 그 뒤 마조의 전설 같은 행적은 끝없이 이어지고 하늘로 올라간 뒤에도 붉은 옷을 입은 여신이 되어 수시로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풍랑을 막아 주고 세상 사람들을 구해 주었다. 미주 사람들은 마조의 은덕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묘를 지어 마조를 모셔 놓았다.
바다를 건너 타이완에 도착한 마조는 중국 미주의 마조와는 큰 차이가 있다. 미주의 마조는 본래 젊고 가냘픈 소녀의 모습으로 양옆에 천리안과 순풍이, 두 시종을 거느렸고 창과 도끼를 들고 있었으나, 타이완의 마조는 살이 찌고 얼굴에 귀티가 흐르는 귀부인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재물을 향한 인간들의 끝없는 욕심 때문에 오늘날 타이완 마조는 해상수호신에서 재물신으로 변하여 삼백팔십삼 개 사묘에서 주신으로 모시고 있다.

땅과 재물의 신 토지공
타이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시는 신은 바로 토지공이다. 토지공을 모셔 놓은 사묘는 너무 많아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인데 길에서도 흔히 볼 수 있고 논밭에서도 흔히 토지공 묘를 볼 수 있다. 토지공에 대한 전설은 여러 설이 있으니, 주나라 때 관리였던 장 복덕이라는 설도 있고 묘지를 지키는 신이 토지공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든 많은 전설을 종합해 보면 토지공은 인정 많고 선량하며 됨됨이가 훌륭한 사람이었다. 토지공의 신상은 모두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데 백발에 흰 수염이 난 미소짓는 노인이다. 인간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인의 모습인 것이다.
토지공은 본래 농민들이 모시던 신이었으나 농민들이 점점 줄어들고 부를 쌓은 이들이 많아짐에 따라 점차 재물을 늘려 주는 재신으로 바뀌어 지금은 광업, 어업, 상업과 금융업에 종사하는 이들까지 토지공을 모시며 재복을 가져다 주기를 기원하고 있다.
음력 이월 이일은 토지공의 탄신일로 집집마다 닭과 오리를 잡아 제사 지낼 준비를 한다. 이날 토지공을 모신 큰 사묘에서는 연극 공연도 하고 여러 가지 볼거리를 행하며 토지공의 탄신을 축원하고 복을 기원하는 행사를 벌인다. 음력 팔월 십오일에도 토지공에게 빠이빠이를 하며 농사가 잘 되도록 도와 주신 은덕에 감사드린다. 토지공은 이미 농민의 신뿐 아니라 상인의 수호신이 되었으니 장사하는 사람들은 매달 음력 이일과 십팔일에 토지공에게 빠이빠이를 한다. 이런 날은 시골은 물론 대도시 거리에서도 음식을 차린 탁자를 밖에 내놓고 향을 피우는 모습을 흔히 구경할 수 있다. 이때 내놓는 음식들은 과일과 사탕, 과자들이 주를 이루는데 콜라나 스포츠 음료가 놓여 있는 걸 보면 괜스레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보통 가정에서는 음력 이월 이일과 십이월 십팔일에 빠이빠이를 하는데 장사하는 집안에서는 특별히 성대하게 치르는 편이다. 그 중간에 있는 빠이빠이는 보통 생략하며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성묘를 갈 때에는 먼저 토지공에게 빠이빠이를 한다. 전에는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토지공을 찾았으나, 오늘날은 집안 식구가 병이 들거나 시험을 치를 때, 아들이 입대할 때, 교통 사고가 났을 때도 토지공에게 빠이빠이한다. 농민들 또한 풍년과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며 과일, 음료, 지전, 향, 초를 갖추고 수시로 토지공에게 빠이빠이한다. 토지공을 모시는 사람들 가운데 농사를 짓거나 부모가 농부인 경우 쇠고기를 먹지 않는데 평생 농사를 도와 준 소를 잡아먹는 것은 보은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까닭에서다. 그러므로 타이완 사람들에게 식사를 대접할 때 쇠고기를 먹는지 먼저 물어 보고 준비하는 게 예의이다.

마조와 토지공뿐 아니라 민간 신앙에서 중요하게 치는 신으로는 역병을 물리치는 왕야와 보생대제, 어민들의 순조로운 항해를 돕는 바다의 수호신 수선존왕을 비롯하여 청수조사, 유응공, 개장성왕, 삼산국왕, 태자야, 현천상제 들 하여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음력 칠월은 귀신의 달
음력 칠월이 되면 타이완의 이삿짐 센터, 부동산 중개소, 웨딩 의상점과 사진관, 해수욕장 같은 곳은 잠시 문을 닫는다. 잡지나 텔레비전에서는 수시로 영혼에 관한 사건을 보도하며 해수욕장의 익사 사건, 교통 사고로 숨진 이들의 영혼에 관해 소개하고, 귀신의 달임을 특별히 강조한다. 칠월이 되면 이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고 타이완에 도착한 외국 유학생들은 방을 구하지 못해 속을 태우기도 한다.

타이완에서 음력 칠월은 귀월, 곧 귀신의 달이라고 한다. 음력 유월 삼십일이 되면 사묘마다 문 앞에 둥근 등롱을 걸어 두고 '중원을 경축한다'는 글을 써서 귀신들에게 곧 칠월임을 알려 준다. 물가에도 수등을 놓아 익사한 귀신들을 잊지 않고 부른다. 칠월이 되면 귀신들을 위한 크고 작은 행사가 전국적으로 끊이지 않는다.

칠월 초하루가 되면 귀문(지옥문)이 열린다고 하여 개귀문이라고 하는데, 이때 모든 귀신들이 지옥에서 석방된다. 이날 오후에는 집집마다 대문 앞에 고기, 생선, 닭, 오리와 채소로 음식을 장만하고 떡, 과일 들을 준비하며 향을 꽂아 불을 붙이고 지전을 태워 귀신들을 위로한다.

칠월 십오일은 중원절이라고 한다. 이날은 귀문이 활짝 열리는 날로 온갖 귀신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성대한 빠이빠이를 하는데, 귀신과 마주치지 않도록 문밖 출입을 삼가며 특히 물가에는 가지 않는다. 물귀신에게 발목을 잡히면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원절에는 특히 귀신들을 바른길로 이끈다는 뜻으로 '중원보도'라는 것을 한다. 보도는 바른길로 이끈다는 뜻으로 보도를 행하는 목적은 지옥문을 빠져 나온 귀신들이 인간 세상에서 말썽부리지 않고 얌전히 지내기를 바라며, 염라대왕께 하루빨리 귀신들이 인간으로 환생하도록 도와 달라며 인정에 호소하는 것이다. 보도에는 공보와 사보가 있다. 사보는 개인이 경비를 내 자기 집안에서 보도하는 것이고, 공보는 마을 사람들이 일정한 날을 정해 함께 보도하는 것을 말하는데 대체로 중원절인 십오일에 보도를 한다. 칠월 십오일은 도교와 불교에서도 중원절과 우란분절 행사가 있는 중요한 날이다. 중원보도의 기원은 우란분절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오늘날 민간 신앙에 있어서 중원절의 뜻은 살아 계신 부모의 복을 기원하고 돌아가신 부모를 제도하는 불교의 우란분절과는 달리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하여 귀신을 배불리 먹이고 지전을 태우는 데 그치고 있다.

칠월 이십구일 밤이 되면 귀문을 닫으니 석방되었던 귀신들은 다시 지옥으로 돌아가야 한다. 밤이 되면 환하게 밝혔던 사묘의 등롱을 내리고 그 동안의 빠이빠이 행사를 모두 끝낸다.

귀신들의 큰 축제 따빠이빠이
빠이빠이 가운데서도 규모가 큰 것을 따빠이빠이라고 한다. 마조와 토지공의 탄신일, 중원절을 비롯하여 일정하게 정해진 날, 각 사묘에서 모시는 신의 탄생일 들에 마을 단위로 따빠이빠이를 한다. 이때 마을에 귀신 들리는 사람이 있는데, 거개가 남자로 평소에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신이 들리면 연신 머리를 흔들며 빠이빠이 행렬 앞에서 신의 지시대로 행동한다. 행렬은 수많은 사람들로 구성되며 상당히 긴 편인데 가마에 신을 모시고 북을 치며 오랜 시간 마을을 돌아다닌다. 신들린 사람은 거개가 맨몸으로, 장검으로 자신의 몸을 그어 피를 내기도 하고, 철사로 볼과 볼을 꿰뚫기도 하며, 우리의 작두와 비슷한 걸 타기도 하고, 또 뾰족한 쇠바늘 방석에 앉는 들 하여 차마 눈뜨고 보기 끔찍한 장면들이 벌어진다. 그이들은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으며 죽는 일도 없다고 하는데,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외환 보유고가 세계에서 세 번째에 드는 나라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는 사실에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따빠이빠이가 있는 날은 집집마다 제각기 음식을 장만하여 집 밖에 탁자를 내놓고 그 위에 음식을 차려낸다. 신이 음식을 들고 가도록 정성을 보이는 것이다. 신을 모신 행렬이 지나가고 나면 마을에선 잔치가 벌어지는데 이때는 지나가던 나그네들도 어느 집 음식이든 마음대로 먹어 볼 수 있는 행운이 주어진다. 나도 밍지옌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따빠이빠이를 구경한 적이 있는데 그 곳의 신들린 남자는 칼로 몸을 북북 그어 피가 뚝뚝 떨어졌다.

빠이빠이에는 정성스런 마음과 함께 음식, 과일, 잔, 젓가락, 금은지, 돈, 향, 술, 세숫대야, 맑은 물, 새 수건 같은 제물들을 준비하는데, 특별히 천신께 제사 지낼 때는 앞뒤 사흘 동안 소식하는 게 좋다. 여기서의 소식이란 비린 것, 누린 것을 뺀 야채 위주의 식사를 말한다.
음식은 고기를 사용할 때는 닭, 오리 한 마리씩, 돼지고기 한 덩이, 생선 한 마리와 돼지 간 한 덩이를 사용하는데 돼지 간은 다른 고기로 대신할 수 있지만 쇠고기는 공자께 제사 지낼 때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다.
과일은 종류에 제한을 두는 경우가 있으니, 보통 빠이빠이가 있을 때는 바나나, 자두, 배, 파인애플 네 가지를 다른 제수용품과 함께 내놓지만, 재물신을 맞아들이거나 천신께 빠이빠이할 때는 네 가지에 귤을 더한다.
금은지는 금박과 은박을 입힌 지전으로, 타이완 사람들은 사묘에서 빠이빠이할 때 금지를 태우는 습관이 있다. 이는 금을 태운다는 뜻으로 신께 정성을 보이는 행위이다. 은지는 주로 조상께 제사 지낼 때나 장례 때 노잣돈으로 쓰라고 태운다. 금지는 태극금, 천금, 수금, 복금 들 하여 종류가 다양하지만 은지는 대은과 소은 두 가지뿐이다. 사묘에 가면 금은지를 태우는 화로가 있는데 지전을 태우는 습관은 낭비라는 생각이 퍼지면서 요즈음 들어서는 자제하는 편이다.


행운을 점치는 척교
척교는 보통 나무의 뿌리나 대나무 뿌리를 깎아 반달 모양으로 만든 한 쌍의 도구이다. 작은 고구마를 반으로 썰어 놓은 것처럼 한쪽은 불룩 튀어나오고 한쪽은 면이 평평한 교는 신께 길흉화복을 묻는 데 사용하는 것으로 늘 사묘의 신단 위에 놓여 있다. 척은 던진다는 뜻으로, 점을 치는 도구인 교를 땅에 던져서 양쪽 모두 안쪽이 나올 때는 음교, 곧 '흉'을 뜻하고, 양쪽 모두 바깥 면이 나왔을 때는 소교라고 하여 '길'과 '흉'이 반씩임을 나타낸다. 한쪽은 바깥 면, 한쪽은 안쪽 면이 나왔을 때는 성교라고 하여 '대길'하다는 뜻인데, 척교하기 전에 먼저 신전에 촛불을 밝히고 향을 올린 뒤 허리를 굽혀 반절하고 신께 척교하는 까닭을 설명해야 한다. 그런 뒤 교를 집어 들고 두 손을 합장하여 다시 반절을 한 뒤 가볍게 땅바닥에 던진다. 성교가 나왔을 때는 신께서 소원을 들어준다는 뜻이지만, 음교나 소교의 경우는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척교할 때는 신에게 재물이나 돈을 바쳐야 하는데 그 값어치는 따지지 않지만, 음교나 소교가 나왔을 때에는 재물과 돈을 더 바치고 다시 척교하여 계속 성교가 나오지 않을 때에는 나올 때까지 성의를 표시하며 척교한다. 그러나 끝내 음교나 소교만 나올 때에는 신의 명령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타이완 사람들이 사묘에 가서 향을 올리는 가장 큰 까닭은 이렇게 교를 던져 자신의 소원을 점치기 위해서인 것이다.


신들의 짝짓기
타이완의 영험한 신들 가운데 출가한 부처가 아니면 신도들은 신들에게 아내를 짝지어 주며 신들의 외로움을 위로한다. 이미 아내가 있는 신들에게는 아내를 함께 모셔 놓기도 하고, 곁에 자녀들을 모시기도 한다. 아내가 없는 신에게는 훌륭한 아내를 바치며 성의를 표시하기도 하는데 이때는 마을 단위로 따빠이빠이를 한다.
민간에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옥황상제가 토지공을 인간 세상으로 내려보내며 사람들을 보호하라고 명령했다. 옥황상제가 토지공에게 백성들이 어떻게 살았으면 좋을지 묻자 토지공은 모든 백성들이 부자로 잘살았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토지공의 아내 토지파는 정색을 했다. "그건 안 됩니다. 돈 많은 사람이 있으면 돈 없는 가난뱅이도 있어야만 합니다." 토지공이 물었다. "그럼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지 않소?" 그러자 토지파가 대답했다. "모두 부자로 살면 우리 딸을 시집보낼 때 누가 가마를 짓겠습니까? 가난한 이들이 궂은일을 해야 우리가 편합니다." 토지공은 아무 말도 못하였고 그때부터 인간 세상에는 빈부의 차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토지파의 이기적인 마음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토지파를 모시려고 하지 않으니, 토지공을 모신 사묘에는 토지공만 외롭게 모신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작은 시골 마을의 토지공 묘에는 토지파를 모신 곳이 없다.


신들도 선택하기 나름
푸젠의 이주민들이 타이완을 개척하기 시작하던 때부터 일본에 점령당한 초기까지 타이완의 이주민들은 생활이 안정되어 마을과 도시를 형성하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활 방식도 크게 바뀌어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을 갖춘 장인들이 사묘를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제 점령 말기에 일본 정부는 타이완을 억압 통치하였고 황국 신민화를 꾀했다. 일본의 압박은 종교에까지 미쳐 그이들은 자기들의 종교를 타이완 주민들에게까지 강요하였으며, 사묘의 재산을 몰수하고 신상을 파괴하며 공개적으로 빠이빠이를 금지했다. 제이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일본은 물러갔지만 타이완으로 쫓겨온 중화민국 정부 또한 민간 신앙을 압박하였다.
천구백칠십이년 이후 타이완에 점차 공업화가 이루어지면서 경제, 사회에 빠른 변화가 일어났고 민간 신앙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정부는 민간의 사묘를 문화 건설로 유도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래서 천구백팔십일년 삼월에는 타이완의 사묘에 대해 중화문화 부흥 촉진을 장려한다는 내용의 시행 요강을 공포하였고 사묘의 환경을 개선하고 저급한 사회 풍토를 개선하도록 유도했다. 민간인들의 재력이 커지면서 사묘가 다시 건설되고 신상이 갈수록 커지며 사묘의 규모도 갈수록 웅장해지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 타이완 전체에서 나타나고 있다. 요즈음 들어 몇몇 주요한 신께 따빠이빠이를 할 때는 주종 관계를 이루는 각 교파의 인원들이 전국에서 동원되기도 하는데, 그이들은 종교 활동뿐 아니라 선거에도 큰 영향력을 보이기도 한다.

타이완 사람들은 빠이빠이를 무척 신봉하지만 요즈음 들어서는 모시던 신이 영험하지 않으면 그 신을 버리고 다른 신에게 빠이빠이하는 현상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를테면 본래 마조에게 빠이를 했던 사람이지만 소원을 이루지 못하면 왕야를 찾아 빠이하고 왕야도 신통치 않으면 다시 상제공, 태자야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빈다.
잡신을 모시는 경우, 일정하지는 않지만 시간과 공간의 흐름에 따라 영험을 발휘하기도 한다. 나토, 오현제, 유응공의 경우 이 신들을 신봉할 때 도박으로 엄청난 돈을 벌 수도 있고, 강간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그 죄에서 구제될 수 있으며,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사람을 조종해 대신 복수해 줄 수도 있고, 귀신을 보내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요즈음은 이런 잡신뿐 아니라 귀신을 모시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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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진 분위기 죽이는데요. ^^;
    저도 DSLR로 업그레이드 하던지 해야겠어요. ㅎㅎ
  2. 샹라이님, 넘 길어 솔직히 다 읽지는 못했습니다. ㅠ
    하지만 사진 속에 여인들은 진정으로 간절히 소망하는 것 같네요,
  3. 아이들하고 손흔들면서 빠이빠이 하는데 대만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이 있군요..
  4. 저는 역사/철학분야에 관심이 많아요
    특히 신화관련 종교분야요. ㅎㅎ
    흥미로운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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