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228사건(二二八事件)대만의 228사건(二二八事件)

Posted at 2008.11.11 11:43 | Posted in 台灣

대만의 2·28사건.

1947년 당시 타이페이 시에서 전매국 단속원들이 밀수 담배를 팔던 한 좌판상 여인을 과잉단속하는 과정에서 총격이 발생해 대만인 한 명이 사망함으로써 촉발된 사건으로, 대만 본토출신인 '대만인(본성인)'과 대륙에서 온 이른바 '외성인' 사이의 갈등요인이 됐다.


중국 본토의 남동 해안에서 160km 떨어진 곳에 있는 타이완섬에는 17세기 중반부터 중국 대륙 본토의 한족(漢族)이 이주해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45년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끝난 후부터 국민당은 국부군을 대만에 파견하는 등 인수작업 실시하였고, 1949년 '중화민국'을 세우기까지 대륙의 중국인들이 대만으로 건너왔다.


이에따라 대만의 한족(漢族)은 중국 대륙에서 조기 이주해온 본성인(本省人 대만인)과 1949년 전후에 장제스의 국민당 정권과 함께 건너온 외성인(外省人)으로 나뉜다. 본성인은 전인구의 85%, 외성인은 13%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둘의 갈등으로 일어난 사건이 소위 '2·28사건'이다.


'2·28사건'은 1947년 2월 27일 타이페이역 근처에서 전매품인 담배를 몰래 팔고 있던 여성을 본토 출신의 전매국 단속반원이 구타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대만인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경찰이 군중을 향해 발포하여 사상자가 나왔다.


사태는 일거에 확대돼 28일에는 타이베이시 전역에서 파업과 철시 및 데모대의 시위가 시가지를 휩쓸었고, 3월 1일 이후 전 섬으로 확대되었다.


이에 당황한 국민당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3월 8일 본토에서 2개 사단의 진압군을 대만으로 불러들여 3월 9일부터 대대적인 살육과 약탈을 자행하면서 진압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학생등 무고한 대만 원주민들이 무참히 죽었고 현지의 정치 지도자들과 경제인 언론인들도 체포되거나 처형됐다. 정부 발표로만 2만8천여 명이라는 희생자를 냈다.


이 사건은 대만 토박이들과 1945년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끝난 뒤 대만으로 이주한 중국인, 1949년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공산당에 패한 뒤 대만으로 피란한 중국인을 분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 사건 이후 국민당 정부의 군사 독재는 1949년에서 1987년까지의 계엄령으로 이어졌으며, '백색공포'로 알려진 40년의 탄압정치로 이어졌다.


1987년 대만에서 계엄령이 해제되기 전에는 이에 대해 말을 꺼내는 것조차 금기로 여겨졌다.


그러나 1988년 리덩후이 정권이 출범한 후 '2·28 사건'의 진상조사가 진행되었다. 4년간에 걸친 진상조사 끝에 나온 공식보고서에서는 당시 사망자가 본토 이주자 7백 ~8백명을 포함해 1만 8천~ 2만 8천명이라고 발표했다.


1995년에 2월 28일에는 사건발생 48년만에 리덩후이 총통이 국가 수반으로는 처음으로 희생자 가족에 사죄의 뜻을 표시하는 한편 2월 28일을 `평화의 날'로 제정하고 사건 진상규명을 약속했다. 이날 대만 타이베이 공원에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비가 세워졌다.


결국 1997년 대만정부는 사건 50주년을 맞아 과거정권의 잘못에 대해 정부의 공식사과를 발표하고 2.28 기념탑과 기념관을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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